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한류스타가 된 베짱이]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한류스타가 된 베짱이]



이솝우화는 고대 그리스 작가 이솝(Aesop)이 창작한 이야기들이다. 토끼와 거북이, 황금알을 낳는 암탉, 시골 쥐와 서울 쥐, 여우와 두루미, 늑대와 양치기 소년 등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교훈적인 결말로 전 세계 어린이들의 덕성 교육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솝우화 중 하나인 ‘개미와 베짱이’ 원작의 줄거리는 이렇다. 베짱이는 언제나 풀잎에 앉아 노래를 부르거나 그늘에서 누워서 잠을 청한다. 그런 베짱이는 날 좋은 봄에도,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에도 뙤약볕에서 힘들게 일만 하는 개미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놀려댄다. 그러나 개미는 베짱이의 타박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단풍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에도 베짱이와 개미의 삶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눈이 펑펑 내리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오자 둘의 입장은 달라진다. 노래를 부르며 놀기만 하던 베짱이는 추운 겨울 오갈 곳 없이 배고픔과 추위에 떨었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일한 개미의 집 굴뚝에서는 모락모락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고, 따뜻한 집 안에서는 개미 가족의 행복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베짱이는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개미의 집 문을 두드렸지만 개미는 게을렀던 베짱이를 문전박대한다.


개미와 베짱이의 교훈은 열심히 노력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솝의 계몽 의지와 교훈은 싹 없애버린 새로운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고 있다. 
현대판 개미와 베짱이는 우화 속 교훈은 오로지 재미 위주로 각색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가난한 가정에 태어난 월급쟁이 개미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동산 부자를 부모로 둔 베짱이를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빈부격차는 더 심해진다. 한편, 일은 안 하고 열심히 노래만 부른 베짱이가 한류스타가 되어 대성공한다.


어릴 적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던 이솝우화가 이렇듯 전혀 교훈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은, 우스운 이야기로 전락되어 아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데 여간 마음이 쓰린 게 아니다. 성장과정에서 올바른 교육을 통해 지식과 인성을 함께 배워나가야 할 어린아이들에게 허무맹랑하게 변경된 이야기들이 어떻게 작용할지, 특히 아이들이 변경된 내용이나 그릇된 정보를 재미와 교훈 사이에서 올바로 판단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파급력이 큰 방송도 역사적 인물을 희화화하거나 역사를 왜곡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은 극중 여주인공의 이름을 성웅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이름을 사용했다. 문제는 “이름이 너무 세면 팔자를 말아먹는다”, “이순신이 백원짜리지 천원짜리냐”, “해경에 지원해서 독도나 지켜라” 등 이순신 장군을 연상케 하며 비하하는 대사들을 거침없이 방송에 내보냈다는 점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어느 단체에서는 역사적 혼란을 가져오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바꾸고, 극중에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이러한 근본 없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들과 왜곡된 역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실로 둔갑해 버린다는 데 있다. 변경된 내용에 노출된 학생들은 동화의 원 줄거리를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야스쿠니신사의 신사를 ‘젠틀맨(gentlemen)’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거나 3.1절을 ‘삼점일절’이라고 읽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러다가 독도도 빼앗기고 마는 것은 아닐까. 진실되게 보존되어야 할 역사까지 왜곡되어 잘못된 정보와 지식이 난무하는 것에 뒤늦게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곧 바로잡히리라 기대해본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다. 우리의 영혼 구원과 직결되는 교회사는 더 크게 변질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연하게 일요일예배를 지키고, 크리스마스를 지켰던 기독교인들에게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왜곡된 것이라고 한다면 놀랄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구원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가 등장할 것인데, 그가 바로 하나님의 절기를 변개하여 성도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5)



하나님의 때와 법이라 함은 정해진 날짜에 지켜지는 하나님의 계명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늘 백성이라면 응당 하나님께서 지키라 명하신 계명에 순종하여 지킬 것이고,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주시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15)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한일서 5:3)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시편 119:166)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구원이 약속된 하나님의 계명이 완전히 짓밟히고 왜곡됐다. 그 단체를 찾아야 한다. 그 단체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멸망받을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성서만이 종교 사정에 있어 유일하게 안전한 길잡이라고 믿고 있다. 또 그리스도교 신앙에 결부된 기본적 의무의 하나가 주일을 지키는 것임도 믿는다. … 나는 성서를 창세기 첫 장부터 묵시록 끝 장까지 다 읽어 보았지만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구절은 발견하지 못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기는, 한 주일의 첫날인 일요일을 지키라 하지 않고 마지막 날인 토요일을 지키라고 되어 있다.” -억만인의 신앙, 가톨릭출판사-


“그렇지만 성서에 일요일이 아니라 … 이것은 비록 성서에 명시된 글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바탕을 둔 것이지만 그들은 이 관습을 그대로 계속해오고 있다.” -억만인의 신앙,  가톨릭출판사-


이 책들을 통해 성경의 예배일인 토요일 안식일이 로마 가톨릭 교황청의 권위로 A.D. 321년 지금의 주일예배인 일요일예배로 둔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55년 폴리캅은 로마 교황 아니케터스와 이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 아니케터스보다 훨씬 더 유력하던 로마 교황 빅터는 모든 혼란을 중지시키고 부활절(유월절)을 일요일에 지키는 도미닉의 규칙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교회사 초대편, 대한기독교서회-


죄사함과 영생의 축복이 있는 하나님의 계명 유월절 역시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A.D. 325년 폐지해버렸다.


“로마법황청이 고대 로마력으로 동지날인 크리스머스로 성탄일을 통일시킨 것은 4세기 중엽쯤의 일이었다.” -조선일보, 1984년 6월 28일자-


성경에는 없는 태양신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를 도입한 단체 역시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다. 심지어 “교황은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십계명까지 바꿔버렸으면서도 “주여 주여 저는 주를 믿습니다”를 외치면서 거룩한 척하는 뻔뻔함을 보여주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 없이 순종했을 때 주어지는 축복이다(요한계시록 22:18~19). 반대로 변경된 내용이 아무리 편하고, 쉽고, 재미있고, 보편화되어 있다 한들 그것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멸망뿐이다. 이솝우화 속 베짱이는 일락에 빠져 겨울을 준비하지 못해 망했고, 개미는 열심히 겨울을 준비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손 대대로 교훈을 주는 이야기로 전해져야 하되, 절대 변질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페루를 흔드는 뉴스~ 하나님의교회 소식



하나님의교회를 알게되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소식을 받아들이는 세계인들의 반응은 저마다 다르고 폭발적입니다.

2년 전 페루를 뒤흔든 하나님의교회 새언약 진리의 소식은 지금도 우리들 가슴에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성호가 지금보다 더욱 더 전 세계에 가득~ 울려 퍼지길 소망하면서 다시한번 그 감동에 젖어 봅니다~



2014년 11월 26일 수요일

귀를 막지 마세요 우리 어머니 이야기 입니다.




낯선 무언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대다수 사람의 공통점일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어머니하나님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낯선 존재인가 봅니다.

하지만...슬프게도 어머니하나님은 낯선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은 모든 만물 속에 어머니의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귀를 막지 마세요...우리가 기억치 못할 뿐이지 어머니하나님은 우리 어머니 이십니다.



2014년 11월 25일 화요일

장난감이 주는 교훈 [처음부터 어머니하나님은 아버지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장난감이 주는 교훈

*출처: 패스티브닷컴




영국 런던의 템스 강에는 1894년 완공된 805m의 길고도 독특한 다리가 놓여 있다. 그 유명한 ‘타워브리지’가 그것이다. 양 옆으로 중세 고딕 양식의 웅장한 탑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이 다리는 런던 국회의사당의 시계탑과 함께 런던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라 할 수 있다. 대형 선박이 지나갈 때마다 하늘로 솟아오르며 쪼개지듯 열리는 모습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할 볼거리로 손꼽힌다.



그런데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다리를 영국의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샀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도 이 다리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일까? 사실 베컴이 구입한 타워브리지는 실제 다리가 아니다. 장난감회사 레고(Lego)에서 판매하는 브릭 장난감이다.



레고는 수많은 종류의 실물과 다양한 인물을 모방하여 끼워 맞추는 브릭과 미니피규어 등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유아에서부터 성인매니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겨냥한 제품을 고안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로봇 시리즈는 물론, 영화 속 주인공이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조그맣게 재탄생시킨 미니피규어들도 상당하다. 캐슬 시리즈는 중세시대의 성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중세 사람들과 군사들을 닮은 미니피규어까지 구성돼 있다. 전 세계적으로 레고 완제품은 1초에 7개, 1분에 420개, 1시간에 2만 5000개, 1년에 2억 박스 이상이 팔린다고 한다.



이러한 레고의 열혈팬인 베컴이 구입한 브릭 타워브리지는 4287개의 조각 부품으로 구성된 높이 45cm, 폭 26cm, 길이 102cm 크기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 등 세계 유명 건축물을 본떠 만들 수 있는 아키텍처 시리즈 중 하나다.



장난감 타워브리지는 템스 강의 거대한 타워브리지를 모방해 제작된 작은 장난감에 불과하지만, 기존 장난감에 비해 매우 정교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자그마치 4287개의 브릭을 일일이 조립해야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실제 건축물이 주는 웅장함이나 아름다움은 따라갈 수 없고, 18세기 영국 사회에 대변혁을 일으켰던 산업혁명의 역사를 함께한 타워브리지의 감동은 절대 줄 수 없는 것이 모형의 한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제도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셨다(히브리서 8:5). 이 말씀은 이 땅의 가족이 있는 것처럼 하늘의 가족이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한집에서 동고동락하며 살아가는 가족을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자. 아버지, 형제자매, 그리고 어머니가 있다. 이처럼 하늘 가족도 아버지, 형제자매, 그리고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태복음 6:9)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고린도후서 6:18)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장난감 회사에서 만든 모형 타워브리지를 통해 실제 타워브리지에 대해 이해하고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듯, 이 땅의 가족제도는 범죄함으로 쫓겨난 하늘의 가족제도를 이해할 수 있다. 천국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라면 영적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관계 속에 등장하시는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한다.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온종일 자녀만을 위한 삶을 살며, 자녀가 겪는 기쁨과 슬픔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슬퍼하는 분이 어머니시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사랑을 가르쳐주시고, 장성하여도 그 관심은 멈추지 않은 채 더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죄인처럼 탓하시는 어머니시다. 자녀라는 이름으로 헌신과 희생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철없는 자녀들에게 어머니는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신다. 이러한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은 어머니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모형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교만한 인간들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혼잡게 하실 때, 이사야 선지자를 파송할 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창세기 1:26~27, 창 11:7, 이사야 6:8). 태초부터 지금까지 아버지 하나님과 구속의 경륜을 펼치시며 때가 되어 예언의 이 시대에 이 땅에 임하신 것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사망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는 자녀들을 살리기 위해 광풍에 요동하여도 안위를 받지 못하는 삶 속에서도 복음의 행보를 멈추지 않으신다. 사랑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이 땅의 어머니들의 실체인 하늘 어머니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전 세계 각국으로 퍼져서 구원의 소식에 감동받은 수많은 영혼들이 어머니 하나님께로 속속 나아오고 있다.



이제는 모형을 통해 실체를 깨달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혹, 육신을 낳아주신 어머니는 인정하지만 영혼을 낳아주신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한번쯤 브릭 장난감을 조립해보기를 권한다. 부디 그 경험을 통해 모형과 실물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어머니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구원의 손길을 붙잡게 되기를 바란다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말씀에 의지하니 기적을 봅니다~ ^^ 어머니하나님 믿는 하나님의교회

말씀에 의지하니 기적을 봅니다~ ^^ 

어머니하나님 믿는 하나님의교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지요.
때론 사람들의 협소한 생각이 하나님의 깊고, 넓고, 높~~은 뜻에 가 닿지 못하다보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어려워합니다. 부정하기 일쑤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셨을 때에도 그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펼치시는 이적과 기사가 놀라우면서도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던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를 낚는 기적을 보았고,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도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였던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물을 질 좋은 포도주로 만드신 기적을 보았습니다.


눅 5:4~6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요 2:1~9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 "


베드로와 가나의 혼인잔치에 등장한 하인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였기에 기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 하나님의교회로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아와 진리를 영접하고 천국소망을 키워감은 마지막 시대 어머니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취고 그 영광의 빛을 본 사람들은 반드시 어머니하나님께로 나아온다는 하나님의 예언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 60:1~3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어머니하나님 영광의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어머니하나님 영광의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어머니하나님 영광의 빛)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어머니하나님)로 오느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그 모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기적을 봅니다.
어머니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모든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날마다 놀라운 기적을 봅니다.
다음은 바로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지구가 둥근 이유~ 사랑을 배우는 하나님의교회 ^^

하나님께서 세상을 둥글둥글하게 창조하신 이유를 아시나요?

마음도, 성품도, 말씨도 둥글둥글해지라고 그러셨다고 어느 글에 있어서 인용해봅니다.



♧ 둥근 세상♧

지구가 둥글고
태양이 둥글고 달이 둥근 이유를 아십니까?

바로 우리의 삶을
둥글게 살라는 무언의 표상입니다.

둥글게 일하십시오.
모나게 일하면 다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둥글게 즐기십시오.
모나게 즐기면 끝에 가서
꼭 싸우게 됩니다.

둥글게 말을 하십시오.
모난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둥근 사람은 친구가 찾아오고 둥근 사람은 볼수록 넉넉합니다.

아무리 모난 마음으로 왔다가도 둥근 사람의 따뜻함에 그만 녹아지고

아무리 큰 문제를 안고와도 둥근 사람에게는 작아지고 맙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지구가
둥글고 달이 둥글고 해가 둥글기 때문입니다.

^^



사실 하나님의교회에서 아버지 안상홍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배워가면서 진실된 겸손과 배려과 양보를 실천하게 됩니다.

참하나님 계시는 하나님의교회에서 그렇게 많은 모습이 아름답게 변화되어 갑니다. ^^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어느 어머니의 기억 하나....

어느 어머니의 기억 하나.





"그녀가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름도,나이도,사랑했던 나조차도...."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중 철수의 대사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인 수진은 건망증 때문에 남편의 도시락을 밥만 두 개 싸주거나, 매일 가는 집조차 찾지 못하고 헤멜 때도 있다.
철수는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수진의 건망증은 점점 심각해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게 된 수진은 자신의 뇌가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남편 철수에게 그 사실을 말한다.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대."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가히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다. 
물론, 나쁜 기억은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소중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내 기억조차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현대의학에서는 기억을 잊어버리는 현상을 '기억상실증'이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서서히 기억을 잊어버리는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으로, 
1907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박사에 의해 최초로 보고되었다.


알츠하이머병은 매우 서서히 발병하여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경과가 특징적이다.
초기에는 주로 최근 일에 대한 기억력에서 문제를 보이다가 진행하면서 
언어기능이나 판단력 등 다른 여러 인지기능의 이상이 동반되다가 
결국에는 일상생활 기능을 모두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어르신들에게는 암보다 무서운 질병으로 취급받는다. 
발병 연령은 65세 이상 10명 중 1명 꼴로 나타나며, 
때로는 40~50대, 심지어 20~30대에서도 발생하기도 한다. 
정확한 발병 기전과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지난 9월 15일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파출소에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든 채 한 시간째 동네를 서성이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했으나 할머니는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저 보따리를 껴안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당시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할머니 차림새로 미뤄 인근 동네 주민일 것으로 판단해 
할머니를 아는 주민을 찾아나섰다. 
결국 신고 접수 6시간 만에 이웃 주민을 만나 할머니의 딸이 출산했음을 알게 되었고, 
딸이 입원한 한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 도착한 할머니는 딸을 보자 반가워하며 자신이 가져온 보따리를 풀었다. 
“어서 무라(먹으라)”는 말과 함께 펼친 보따리에는 
출산한 딸에게 먹일 미역국과 밥, 반찬 등이 들었다.
온전치 못한 정신임에도 할머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 
이것이 자식을 향한 모정이 아닐까.





지구라는 공간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중요한 기억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자신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존재의 근본도, 의미도 알지 못한 채, 아름다웠던 천상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은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인류를 기억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 
바로 어머니 하나님이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49:15)

출처:



기억을 잃어버린 자녀를 찾아 희생길을 선택하신 어머니하나님.
작은 기억의 한부분이라 할지라도 놓치 못하시는 어머니하나님.
이것은 어머니하나님의 네버엔딩 스토리입니다.

2014년 11월 17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소통하며 쉬어가기 1. 가족애(愛)소통


하나님의교회 소통하며 쉬어가기 1. 가족애(愛)소통



이런 방법은 어때요?


  한 연구팀이 체중 감량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살 빼라!"는 백 마디의 말보다 비만의 부작용, 건강식, 미용에 대한 책으로 건강과 체중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한 참여자들의 다이어트 효과가 높았다고 한다. 이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때론 직설적인 방법보다는 책이나 메모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을 잘 활용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먼저 본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말도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족들에게는 편식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음식을 가려 먹는다면 아무도 그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또, 아이가 인사를 안 하면 잔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인사 좀 해라", "하려면 똑바로 해라"는 식의 지적을 계속 받게 되면 아이는 '나는 인사를 못하는 아이'라는 관념구도가 뇌에 형성된다. 그런 말을 들을수록 관념구도는 점점 강화되어 나중에는 인사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인사하는 것을 회피하게 된다.

  감동을 주는 방법도 있다. 항상 늦잠을 자는 아들에게 잔소리를 하던 아버지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자 하루는 자고 있는 아들의 발을 주물러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행동에 깜짝 놀란 아들이 당황스러워하며 하지마시라고 해도 아침마다 아들의 발을 주물러주었더니, 언제부턴가 아들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잔소리를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한 보험사 광고에 커다란 눈망울의 아기가 등장해 성우의 더빙으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따뜻한 잔소리를 하기로 했다." 듣기 싫은 잔소리도 있지만 "끼니 잘 챙겨 먹어라",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운전 조심하세요" 처럼 가슴 뭉클한 사랑이 느껴지는 '따뜻한 잔소리'도 있다사실, 이런 말들은 잔소리보다는 조언에 가깝다. 나를 위해 진심 어린 마음에서 건네는 조언, 경험에서 우러나는 권고나 충고는 잔소리로 여기지 말고 경청하는 자세로 받아들이자. 곁에서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데 이상하다는 건 무슨 억지?? //머리수건에 대하여

머리수건에 대하여


출처: 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한 가지인데 하나님을 믿는 모습들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교단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여신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쓴다. 또 어떤 교단은 쓰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인지 교리비교를 통해 알아보자.

머리수건은 쓰지 않아도 된다??

1. 근거
여신도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이 말씀이 그 근거라 한다.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고린도후서 3:14)


이 외에도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의 내용 중 ‘여자는 머리가 길면 쓰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는 것이 머리수건을 쓰지 않는 이유다.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고린도전서 11:15)


2. 교단
이러한 교리로 여신도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예배를 보는 교단은 개신교 5개 교단과 소종파인 여호와의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 등이 있다.


3. 결론
성경에는 수건에 대한 언급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 가운데 ‘수건이 벗어지리라’는 말씀은 고린도후서 3장 단 한 곳이다. 그러나 이 말씀도 여신도들이 예배 때 쓰는 머리수건이 아니다. 그 이유는 말씀의 앞뒤 문맥을 자세히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고린도후서 3:13~15)


헬라어에서 수건을 ‘칼륌마’로 표기한다. 이는 베일, 덮개를 뜻하는 단어로 고린도후서 3장에서도 수건을 ‘칼륌마’로 기록하고 있다. 해서 ‘머리에 쓰는 수건을 벗으라는 것이다’가 기성교단의 해석이다. 하지만 앞뒤 문장을 읽어보면 이것은 여자가 머리에 쓰는 수건이 아닌 모세가 얼굴에 썼던 수건, 즉 면파(面帕)다. 모세는 결코 머리에 수건을 썼던 적이 없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씀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는 고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씀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웠더라 (출애굽기 34:33~35)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연유로 그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서렸다. 얼굴에서 나는 광채 때문에 모세는 천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이것이 면파 곧 성경에서 말하는 ‘면박’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두 번째 보내는 편지를 통해 구약의 모세 율법으로 인하여 그 마음이 가려져 그리스도의 율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을 경계했다. 결국 이 말씀은 여신도의 머리수건을 제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이는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율법 외에 다른 것으로 중심을 삼지 말아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율법을 받아들일 때 마음에 가렸던 모든 것이 벗겨질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는 말씀은 머리가 길면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고전 11:15). 만약 이 말씀대로 긴 머리의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짧은 머리의 여신도들은 수건을 써야 한다. 하지만 기성교단은 여신도의 머리 길이에 상관없이 수건을 아예 쓰지 않고 있다.


고린도전서 11장 15절의 이 내용을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But long hair is a beautiful way for a woman to cover her head. (고린도전서 11:15, CEV)


이는 여자의 머리카락(Hair)이 길어 머리(Head)를 덮을 때 아름답게 느껴지는 본성이 곧 여자는 머리(Head)에 무엇을 써야 함을 대신 보여준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말씀 중에 ‘대신하여’라는 단어를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for(위하여)’로 기록돼 있다. 다시 말해 ‘긴 머리는 쓰는 것을 위하여 주신 연고니라’는 말씀이다. 이는 여신도들은 머리에 수건을 꼭 써야 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해서 사도 바울은 바로 뒤 구절에 이렇게 기록했다.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1:16)


어떤 말로도 토를 달지 말고 여신도들은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규례는 없다는 뜻이다.




머리수건을 써야 한다!!

1. 근거
여신도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나 기도를 드려야 하는 규례는 사도 바울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지역의 문란함과 퇴폐적인 풍토를 매우 염려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규례를 그르칠 것을 걱정해 두 번씩이나 편지를 보냈고, 여신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함을 강조됐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린도전서 11:1~2)


사도 바울은 지금부터 하는 당부가 자신의 사사로운 말이 아님을 밝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유전을 지키는 자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고린도전서 11:3~6)


‘그러나’로 시작하는 이 말씀 속에는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혹시 모를 ‘그 일’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사도 바울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고 있다. 혹시 모를 ‘그 일’이라는 것은 바로 뒤에 언급되어 있다.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하지 말 것이며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그토록 염려했던 ‘그 일’이란 여신도가 머리수건을 벗는 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여자가 수건을 벗고 기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 설명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린도전서 11:7~12)


창조의 섭리를 보더라도 여자는 남자를 위해 지음 받았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그가 독처하는 것이 안쓰러워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다. 해서 이런 의미를 잊지 않게 하고자 머리 위에 표를 두게 하셨다. 그것이 바로 여신도들이 쓰는 머리수건이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1:13~16)


이와 함께 사람이 가진 본성을 통해서도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긴 지면을 할애해 여신도들에게 머리수건을 쓰라고 당부한 것은 여자로서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이기 때문이다.


2. 교단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여신도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교단은 천주교와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다. 혹자는 하나님의교회가 천주교의 예배 방식을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천주교는 남자도 머리에 비레타(biretta, 각진 모자), 주케토(zucchetto,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둥근 모자) 등을 쓴다. 성경 말씀 그대로 남자는 쓰지 않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드리는 교단은 오직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뿐이다.


3. 결론
기독교인들이 머리에서 수건을 벗기 시작한 것은 A.D. 55년경부터다. 그 시발점이 그리스 남단에 위치한 고린도 지역에서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이 지역은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이런 입지 조건으로 고린도는 이탈리아, 스페인, 이집트 및 동방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던 상업도시로 발전했다. 도시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게 종교적으로는 굉장히 문란했다. 하지만 그토록 문란했던 고린도 지역에도 하나님의교회가 설립됐고 하나님을 섬기는 다양한 민족들이 유입됐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리는 여신도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멋진 헤어스타일을 자랑하고 싶어 수건을 벗고자 하는 상류층의 여신도들도 있었다.(IVP 성경배경주석 참고) 해서 사도 바울은 여신도들의 머리수건 문제가 점차 불거지자 결국 고린도 지역에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결코 여신도들은 머리수건을 벗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여러 성경의 소제목에서도 여신도의 머리수건 규례는 잘 나타나 있다. 공동번역성경은 ‘여자가 머리를 가리워야 하는 이유’, 현대어성경은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 개역개정판은 ‘여자가 머리를 가리는 것’, 표준새번역은 ‘여자가 머리에 쓰는 너울’, 영어 성경 TEV은 ‘Covering the Head in Worship: 예배 때 머리를 가리는 것’이라고 쓰여 있다.


사도 바울은 머리 수건 문제를 거론하면서 서두에 분명히 이 규례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유전이라고 언급했다. 예수님께서는 한낱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던 적이 있다.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마태복음 15:2)


사람의 유전 때문에 그리스도의 유전을 범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사람의 유전보다 그리스도의 유전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 여신도가 예배드릴 때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유전이다. 이를 지켰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신도로서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닌 욕을 하는 것이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5)


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여호와, 예수 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

여호와, 예수 그리스도, 안상홍 하나님





구원자의 이름은 구원받아 천국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소중한 문제입니다.

먼저 모세, 사무엘, 이사야, 다니엘과 같은 성부시대 선지자들은 성부시대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전하여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은 성자시대 선지자들은 성자시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며 구원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부시대, 성자시대의 구원자의 이름이 각각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시간적인 한계를 정하여 두시고 각시대마다 정하여 두신 구원자의 이름을 영접한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는 성령시대 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새이름으로 임하시는 성령시대 구원자를 영접해야지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시대에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의교회 안상홍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하나님! 그 이름이 바로 예수님의 새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패스티브닷컴에 게재된 [하나님은 두 번 개명하셨다]라는 이 글이 보다 더 이해를 도울 수 있기에 첨부해 봅니다.




하나님은 두 번 개명하셨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오 헨리와 윌리엄 시드니 포터, 이부란과 이금순과 프란체스카 도너, 이산과 이형운과 이홍재. 이들은 여덟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합쳐봐야 세 명이다. ‘마지막 잎새’를 쓴 소설가로 잘 알려진 오 헨리의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다. 또, 이부란과 이금순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한국식 이름이다. 이산과 이형운과 이홍재는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의 이름들이다. 이 세 사람은 여러 개의 이름을 쓴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하나님의 이름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성경을 좀 봤다는 사람은 거침없이 ‘여호와’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다. 그런데 문제가 남는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은 어쩌란 말인가. 또 문제가 남는다. 사도 요한의 계시 중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여호와, 예수, 새 이름. 이 세 개의 이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 하나님의 세 가지 이름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9)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6천 년 구속사업의 기간을 세 시대로 구분하시고 각각 다른 이름으로 구속사업을 펼쳐가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8:19)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지상대명을 허락하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다. 즉 성부(聖父)의 이름이 있고, 성자(聖子)의 이름이 있고, 성령의 이름이 있다는 뜻이다.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다. 그리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다. 그렇다면 성령의 이름은 무엇인가.


* 누가 구원자인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1)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였다. 이 시대에는 성부인 여호와만이 유일한 구원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자시대에 와서는 누가 구원자였는가.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1~12) 


성자시대에 와서는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였다. 시대가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바뀌어 구원자의 이름도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뀐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베풀어주셨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시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성부시대에는 오직 성부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고, 성자시대에는 성자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성령시대로서 구원자의 이름이 성령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이 말씀에서 ‘나’는 예수님이다. 곧 나의 새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이다. ‘예수’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어야 하는 것이다. 새 이름에 대한 다른 예언의 말씀이 있다.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해주겠다고 했는데, 실제 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베드로전서 2:4) 


돌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 돌 위의 새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새 이름을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은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새 이름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다른 이름이므로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다. 바로 이 새 이름이 성령시대 구원자다.


* 누구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가 

성경은 각 시대마다 다른 이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사야 43:10) 


성부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일컬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였다. 구원자가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성자시대가 도래되었을 때는 누구의 증인이 되라고 했는가.


…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6~8) 


성자시대에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구원자가 예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구원자를 증거하는 것이 증인의 사명이다. 지금 성령시대에는 누구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는가. 당연히 새 이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성령시대 구원자, 새 이름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성자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었듯이 지금 성령시대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 응답받을 수 있다(시편 116:4, 요한복음 16:24). 또한,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성자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지금은 반드시 새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요엘 2:32, 로마서 10:9~13). 그렇다면 새 이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베풀어줄 예수님의 새 이름, 성령시대 구원자 성령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경뿐이다.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주는 사랑' 실천하며 소통의 시간 나누는 하나님의교회 사람들 ^^

'주는 사랑' 실천하며 소통하는 하나님의교회 사람들 ^^



주는 사랑이 더 복이 있답니다 ^^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 김주철)는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아 지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연이어지는 정화활동으로 지역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홀로 어렵게 생활하는 소외계층을 위해 다양한 지원에 나서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경남 거제지역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지난 24일에는 거제시 고현동 일대 거주하는 8세대에 생필품을 전달했다.

이번 불우이웃돕기는 장마철 외출이 힘든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김, 휴지, 라면이 전달됐다. 또한 집안 청소 비롯해 외로움으로 힘든 어르신들과 담소를 나누며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신상근 고현동 주민센터장은 "흔히 연말연시와 명절에만 독거노인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쁜 시간 속에 신경써주니 감사하다"며 "어르신 공경 속에 복지향상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보다 따뜻한 사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는 최금옥 (여. 83. 고현동) 할머니는 "혼자 살다보면 생필품이 부족해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외로움이 힘들다"며 "장마철에는 경로당에도 나가기가 부담스러운데 시간을 내어 관심을 방문해주니 너무 고맙다"고 말하며 봉사자의 손을 어루만졌다.

이날 봉사활동에 참여한 김순주 (여. 45.장평동)씨는 "젊은 사람들도 혼자 있으면 정신적으로도 힘든데 조금이나마 어르신들의 고충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며 "즐거움과 기쁨,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박경숙 (여. 49.고현동) 씨도 "어르신에게 이렇게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어 기쁘다"며 "주는 사랑이 받는 사랑보다 더 복이 있다고 하신 하나님의 교훈을 실천할 수 있어 더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날 봉사활동을 준비한 거제 하나님의 교회 황익주 당회장은 "작은 정성이지만 소외계층들에게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길 바라며 이웃사랑 실천의 계기를 마련했다. 항상 당신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배려하시고 보살피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1964년 안상홍님에 의해 설립된 하나님의 교회는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은 현재 전 세계 175개국에 2500여개 교회가 세워져 등록 성도 2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새언약 절기를 지키며 어머니 하나님을 전하며 성경 중심의 선교는 순수한 신앙을 갈망하는 세계인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또한 각 지역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 어머니 전시회 등 문화행사를 비롯해 헌혈, 환경정화, 불우이웃돕기 등의 활발한 봉사활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며 지역사회 귀감이 되고 있다.

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그리스도의 증거가 이적과 기사인가?

그리스도의 증거가 이적과 기사인가?




하나님의교회 성령과 신부되신 안상홍님을 훼방하는 반대자들은 "안상홍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큰 이적과 기사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런 증거가 없어서 믿을수 없다"고 거짓주장하며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안상홍님을 대적합니다.


저들의 주장대로 반드시 이적과 기자를 행해야만 그리스도이신 것일까요?
정답은 No! 입니다.


먼저, 기적이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증거인지 알아볼까 합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는 말세를 만난 우리들에게 거짓 그리스도들이 이적과 기사로 우리의 영혼을 미혹할 것을 알려주시며 미혹되지 않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마24:24-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이 말씀은 이적과 기사는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들이 행하는 것이지 결코 그리스도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을 알게하신 것입니다.


2천년 전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셨고 그 기적을 체험하였던 자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나 영생을 얻지 못하였지요(요6:66)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기사와 이적을 그리스도께서는 베풀지 않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베푸신 진정한 기적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로 새언약유월절로 영원한 생명을 베푸시는 놀라운 기적을 접하고서도 오히려 믿지 않습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 




오직 생명이신 하나님만이 베푸시는 기적 앞에 저들은 머뭇거리며 필요없다고 합니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기사와 이적이 아닐꺼라 생각합니다.
그저...육체로 오신 안상홍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으려는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저들의 저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2014년 11월 7일 금요일

하피모는 헤이트스피치로 하나님의교회에 피해를 입히는 가해자 집단입니다.


혹시 하피모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하피모는 자칭 하나님의교회에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모임이라고 합니다.

과연...그러할까요?



실상 하피모는 하나님의교회에서 피해를 받은 단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교회에 대한 허위사실과 악성루머를 유포하여 사람들의 편견과 증오를 선동하는 헤이트 스피치를 자행하는 단체입니다.

즉 피해자를 자칭하지만 실제는 하나님의교회에 피해를 입히는 가해자! 가해자 단체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피모 저들이 행하고 있는 헤이트 스피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왜 위험한 행동인지 알아야 되겠죠?

얼마전에 법무경찰신문에 나온 기사내용을 통해 조금 알려드릴께요~



헤이트 스피치는 국가, 민족, 인종, 종교, 피부색, 국적, 성별 등이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차별과 공격을 가하는 다양한 언어적 폭력 행위를 말한다. 증오단체는 특정한 민족이나 인종, 종교집단에 대해 편견과 증오를 가지고 이 집단을 완전히 말살하거나 부분적으로 파괴시키기 위해 증오심을 선동한다.



선동을 할 때 사용하는 연설, 웅변, 기사, 그림, 노래, 영화 등이 모두 헤이트 스피치에 해당한다. 증오가 담긴 헤이트 스피치는 그 자체로 잔인한 칼날이다. 증오에 의한 헤이트 스피치는 폭언에서 그치지 않고 폭력 즉 증오범죄로까지 나아간다. 헤이트 스피치는 에서 증오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는 증오범죄(Hate Crime)의 범주에 속한다.



홀로코스트를 연구한 미국 하버드대의 저명한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증오범죄가 5단계를 거쳐 최종 살상행위로 이어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 1단계는 부정적 발언이다. 특정 집단을 조롱하거나 경멸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2단계는 회피다. 일명 ‘왕따’행위다. 3단계는 차별이다. 구성원들은 “저 사람들은 차별 받아도 마땅해‘라며 차별을 정당화하고 제도적 법률적 차별로 확대시킨다.

4단계는 물리적 공격이다. 가벼운 공격행위를 사회 전체가 용인하기 때문에 신체적 공격을 가해도 범죄의식을 못 느끼게 된다. 5단계는 몰살이다. 특정 집단을 사회에서 영원히 제거해야 한다며 스스럼없이 살상행위에 나서게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헤이트 스피치는 증오를 고취하고 폭력을 선동하는 역할을 한다.

헤이트 스피치나 증오범죄를 하는 사람 혹은 증오단체는 그러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고통을 준다는 생각도, 범죄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헤이트 스피치와 증오범죄를 방치한다면 전염 속도가 빠른 편견과 증오로 인해 사회 전체가 심각한 분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편견과 증오는 전달되는 과정에서 과격화되는 경향이 있다.


나치의 600만 대학살 사건은 헤이트 스피치와 증오범죄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악명 높은 선동가로 알려진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가 패망하기까지 13년 동안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입이 되어 대중을 선동했다. 그는 나치당 잡지의 편집자에서 시작해 선전 장관까지 오르며 국민들로 하여금 나치와 히틀러에 매료되게 만들었고, 인간다움을 상실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도록 이성을 마비시켰다. 민족적 증오심을 흡수하도록 만든 그의 헤이트 스피치로 인해 나치는 결국 600만 명의 유대인과 집시, 장애인들을 학살했다.

독일인 율리우스 슈트라이허가 1946년 뉘렌베르크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것도 헤이트 스피치 때문이었다. 그는 신문 발행인에 불과했지만 게슈타포(독일 정치경찰) 설립자 헤르만 괴링, 친위대 내 히틀러의 2인자 에른스트 칼텐브룬너, 폴란드 총독 한스 푸랑크와 함께 교수대에 올라야 했다. 데릭 존슨의 책 ‘거짓된 진실’에는 당시 재판장에서 검사가 한 발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고인이 반유대인 범죄의 물리적인 범행에 직접 관여한 정도는 비교적 낮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에서 피고는 직접적인 범죄보다 더 큰 죄를 지은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정부도 그들의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없다면 대량 학살 정책을 시작하고 실행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을 교육하고 살인자들을 만들어내고 증오를 가르치고 증오를 주입하는 것 … 그것이 슈트라이허의 일이었다. … 일찍이 그는 박해를 주장했다. 그리고 박해가 벌어지자 그는 몰살과 절멸을 이야기했다. … 이런 범죄들은 피고나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 그가 없었다면, 헤르만 괴링, 칼텐브룬너, 히틀러 같은 자들의 명령을 따를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 헤이트 스피치의 대표적인 유형이 하피모라 할수 있겠다.


하피모는 종교적 편견과 증오심을 공유할 수 있다면 아무리 배타적인 종교적 신념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융합하는 독특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가장 이율배반적이고 모순된 관계가 하피모 대표 이덕술 목사와 비방선동집회를 주도하는 하피모 회원 강근병 씨다. 이 목사는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서울상담소 소장을 맡고 있고, 강 씨는 자칭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

강 씨는 지난 2007년 11월 중국 하얼빈에서 “중국 모든 교회에 나 자신이 재림예수임을 알린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하얼빈 선언’이다. 자신이 재림주라고 주장한 강 씨는 “2006년 3월 7일 회사를 퇴직한 후 그 해 오순절을 앞두고 기도를 시작한지 30초 만에 앞에 등장한 천사의 모습을 보게 됨. 이후 눈에서 황금색 액체가 눈물이 흐르듯 흐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구약성경의 비밀들을 보게 됨.”, “하나님의 교회 모든 성도는 들으라. 당시 하얼빈에서 내 와이셔츠에 묻어 있었던 것은 피가 아니라 고추장이다. 2천 년 전 피를 흘렸으면 됐지 다시 한 번 피 흘리기를 바라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또 “2천 년 전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기 전 그 모습을 재연해서 나 자신이 재림예수임을 알리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강 씨는 헌금, 십일조, 예배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 씨는 스스로 하나님을 자처하면서도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표적으로 삼은 비방선동집회에 주력하고 있다. 강 씨는 자신을 하나님으로 추종하는 신도 조 모 씨와 함께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비방선동집회를 벌이고 있다. 그는 시위 과정에서 타 종교를 비방하는 표현과 모욕적인 말로 자주 물의를 빚고 있는데, 시위 도중 지나가는 개를 보며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따라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해 주변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강 씨는 최근 하나님의 교회 탈퇴자들의 모임 ‘시오니즘’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이 같은 강 씨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가 강 씨의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교계 안팎에서도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목사가 소위 ‘이단척결’을 주장하면서도 강 씨와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실제 강 씨를 재림예수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출처 : 법무경찰신문(www.112news.co.kr)

   

법무경찰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보더라도 지금 하피모는 하나님의교회를 훼방하기 위해 온갖 거짓말로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없는 내용을 꾸며서 마치 사실인양 떠들어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피모의 주요 간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교회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진실은 하나님의교회에서 공금횡령, 재산갈취, 가정폭력으로 법적처벌을 받고 제명처분되어서 쫓겨난 자들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하나님의교회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악성루머와 허위사실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하며 하나님의교회를 음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인해 피해를 당했다면 경찰에 당당히 신고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 억울함을 해소하면 되지 않을까요?
저들이 하나님의교회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면 당연히 그 증거가 있어야되겠지만 오히려 하피모로부터 하나님의교회가 피해를 봤다는 법적 처분과 증거들만이 사실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대로 과연 하나님의교회가 그렇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단체일까요?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전세계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봉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해외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교회 봉사활동은 수상을 하고 시장,국가로부터 인정받고 각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언론에서도 계속해서 칭찬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하나님의교회입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죠?ㅎㅎㅎ



2014년 11월 6일 목요일

평화의 장소 => 어머니하나님



평화의 장소라 불리우는 중심지.

많은 인생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

그 곳은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하나님의 품입니다.


세상에서 상하고 찢긴 영혼들이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께 치유와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은
어머니 당신이,
우리 영혼의 안식처이자 따뜻한 보금자리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 11월 5일 수요일

마음에 새겨주신 새언약유월절 ♥

마음에 새겨주신 새언약유월절 ♥




마음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잘 아시기에,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려 새언약유월절을 우리 마음에 새겨주셨나 봅니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마음에 기록한 법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 31:31~33)


구약성경의 이 말씀은 날이 이를 때, 즉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시간이 이르렀 때 세워주실 새로운 언약, 새 언약에 대한 기록이다. 새 언약이 굳이 필요한 이유는 옛 언약인 구약의 한계성 때문이다.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브리서 8:7~8)


첫 언약은 옛 언약인 구약을 말한다. 이 언약이 흠이 있어 하나님께서는 굳이 둘째 것인 새 언약을 주셨다. 사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이 흠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옛 언약이 사람인 우리가 지켜 구원받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래서 첫 언약을 흠이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 새롭게 세워주신 둘째 언약, 새 언약은 말 그대로 완전무결하다. 이는 새 언약을 ‘마음에 기록했다’는 말씀으로 알 수 있다. 돌비에 기록했던 옛 언약은 유한했다. 돌이라는 물질에 기록된 것이기에 깨어지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음에 기록한 새 언약은 영원하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기록한 영원한 언약인 새 언약을 지키는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새 언약을 지키는 사람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새 언약이 마음에 기록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니, 새 언약이 마음에 기록된 것을 우리는 왜 모를까. 이를 두고 사도 바울은 우리 마음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린도후서 3:12~16)


이 말씀 가운데 모세가 썼던 수건은 면박, 즉 얼굴을 가리는 데 사용한 수건이다. 사도 바울은 이 면박이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볼 때 그 마음에 덮여 있어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그 면박이 벗어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을 덮고 있는 면박 때문에 우리 마음에 주신 새 언약을 올바로 깨닫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 너희가 만일 여호와께 돌아오면 너희 형제와 너희 자녀가 사로잡은 자에게서 자비를 입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역대하 30:1~9)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절기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남 유다뿐 아니라 북 이스라엘에까지 보발꾼을 보냈다. 보발꾼이 북 이스라엘에 당도해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라 하며 그것이 곧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임을 알렸다.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방법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인데, 이것이 곧 우리 마음에 덮여 있는 면박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새 언약을 온전히 알아볼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가 유월절을 지켜야 마음을 가리고 있는 면박과 마음에 덮인 휘장을 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25:6~8)




사망을 멸하는 포도주는 성경에서 오직 유월절뿐이다. 유월절을 ‘오래 저장했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새로운 약속을 하시며 세워주신 이후,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유월절이 폐지되었고 1,600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유월절이 회복되므로 모든 민족의 가려진 면박과 덮인 휘장이 없어질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비로소 우리의 마음에 두신 새 언약의 법도가 무엇인지 드러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하늘의 법도. 오직 마음에 기록되어, 마음에 덮여 있는 면박을 제하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는 두 번째 언약. 그것은 유월절을 지켜야만 올바로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새 언약’이라고 단언하셨다.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20)


여기서 ‘너희’는 새 언약인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유월절을 지켜야만 마침내 드러나는 하나님의 법, 새 언약. 마음에 드리워진 어둠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구원의 밝은 빛으로 인도하는 새 언약 유월절. 그래서 유월절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영생의 길임을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다.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이사야 25:9)